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(문단 편집) === 검은 장갑 사건 === [[파일:external/media.npr.org/12.7-john-carlos_custom-eb9a2f673189abbbed6cbba96d6ed7a65db4393b-s6-c30.jpg|width=480&align=center]] || [youtube(t05O38MaKdc)] || || 별별스포츠 #94 - 올림픽 영웅이 조국에서 평생 배신자로 낙인찍혔던 이유는? || 남자 200m에서 1, 3위를 차지한 토미 스미스(Tommie C. Smith)와 존 카를로스(John Wesley Carlos)는 메달시상식에서 이 해 [[4월 4일]]에 암살당한 [[마틴 루터 킹]] 목사에 대한 추모[* 같은 해 6월에는 대선 후보로 유력했던 [[존 F. 케네디]]의 동생인 [[로버트 케네디]]도 암살되었는데, 그 또한 인권을 중시했던 사람이었다.]와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뜻으로 [[성조기]]를 쳐다보지 않고 '''검은 장갑을 끼고서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올렸다'''.[* 훗날 존 카를로스는 당시 자신들의 행동이 [[1936 베를린 올림픽]] 마라톤에서 [[손기정]]과 [[남승룡]]이 [[일장기]]를 달고 시상대에 섰던 모습을 담은 기록영상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회고했다. [[https://www.joongang.co.kr/article/24016140|#]] 공교롭게도 두 장면 모두 당사자가 자신들의 정체성(손기정과 남승룡은 [[일본 제국]]의 [[일제강점기|식민통치]] 아래에 있던 [[한국인]],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[[미국]] 내의 인종차별로 박해받던 [[미국 흑인|흑인]])을 부정받았던 이들이었으며 금메달, 동메달을 각각 수상했다.] 이른바 '검은 장갑 사건'(Black Power Salute)으로 불린 이 모습은 멕시코 올림픽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남았다. 시상대에 올라선 스미스는 "우리는 흑인이다" 를 뜻하는 검은색 장갑을 오른손에 끼고, 목에 "흑인의 자부심"을 뜻하는 검은 스카프를 둘렀으며, 왼손에는 [[평화]]를 상징하는 [[올리브나무]] 묘목이 담긴 상자를 들고 있고, 3위인 카를로스 역시 왼손에 검은색 장갑을 끼었고[* 원래 둘 다 검정 장갑을 끼고 오기로 계획했으나 카를로스가 깜빡 잊고 장갑을 가져오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는데 은메달을 딴 피터 노먼이 '그럼 나눠 껴라' 라고 조언해 줬다고 한다.], "흑인의 가난"을 상징하는 검정색 양말을 끼었으며, 은색 목걸이에 점퍼를 풀어해쳐서 미국 노동자들의 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. 두 선수 모두 운동화를 벗어 그들 옆에 두었으며, 또한 2위를 한 [[호주]] 선수 피터 노먼(Peter George Norman)이 미국 선수들의 설명을 듣고는 즉석에서 흔쾌히 시위 참여를 결정, 세 메달리스트 모두가 왼쪽 가슴에 흰 동그란 배지를 달고 있는데 이것은 '인권을 위한 올림픽 위원회(Olympic Committee for Human Rights; OCHR)를 상징하는 배지였다. 이들의 행위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. 아직 [[인종차별]]이 인류 보편의 해악이라는 인식이 확립되기 이전이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'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'[* 당시에는 이런식으로 극도로 부정적인 문장으로 표현했는데, 사실 이 규정은 21세기에도 표현만 바꿔서 어느정도 비슷한 맥락에서 잔존해있다. '스포츠의 정치적 중립 위배'가 바로 그것.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[[박종우(축구선수)|박종우]]의 '독도는 우리땅' 세리머니가 문제시된 이유이기도 하다. 따라서 스미스와 카를로스의 시위가 21세기에 일어났다면 국가적/사회적으로는 문제시할 이유가 없고 다수에게 지지받았겠으나,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한해서는 여전히 문제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.]라며 이들을 선수촌에서 추방했다.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미국인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"일부 몰지각한 [[니그로]]들의 추태"라면서 격렬히 비난할 정도였으며 이들의 메달을 박탈하는 것까지 고려하였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. 두 선수는 시상식 직후 일부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고, 귀국하는 길에 공항에서 [[토마토]] 세례를 받아야 했다. 이후에도 [[백인]]들의 암살 협박에 시달리면서 오랜 시간동안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은둔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. [youtube(1ZttN9hPvx4)] 시상식 당시의 모습과 금메달을 받은 스미스의 인터뷰를 담은 뉴스 영상 이후 미국에서 흑인의 인권이 신장되면서 이들 선수들은 인종 차별에 반대한 용기있는 행위를 한 선각자로 평가받게 되었다. 두 선수의 행동은 흑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명장면 중 하나로 재조명되었으며, 이들의 사진은 록밴드 [[RATM]]의 싱글 Testify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고, 인종갈등을 다룬 다룬 영화 [[리멤버 타이탄]]에서도 이 사진이 나온다. [[2005년]]에 토미 스미스의 모교인 [[산호세 주립대학교]]에서 이 사진을 모델로 한 [[동상]]이 세워졌다. 이 동상에는 피터 노먼이 섰던 2위 자리가 비어있는데 이는 피터 노먼 본인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, 자신은 전혀 중요한 사람이 아니며 동상을 본 사람이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. 검은 장갑은 끼지 않았으나 뱃지를 달아 시위에 동참했던 피터 노먼 역시 큰 시련을 겪었다. 피터 노먼은 어릴적부터 독실한 [[기독교]] 신자인 아버지와 함께 차별받는 유색인종 극빈자들을 위해서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등 인권운동에 적극적이었는데, 같이 시상대에 오르는 스미스와 카를로스의 계획을 우연히 알고 그에 감명받아 보트경기에 출전했던 다른 [[미국인]] 흑인 선수에게서 OPHR 뱃지를 빌려 착용한 상태로 시상대에 올랐다. 그러나 당시 [[호주]]는 [[백호주의]]로 인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배척이 매우 심각하던 시절이라, '''호주 최초의 육상 메달을 획득'''했음에도[* 보통 스포츠에서 특정 국가에 기념비적 수상,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국민적 영웅으로 불리고, 해당 선수의 사상이나 발언 등이 국민 여론에 적잖게 영향을 주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. 그러나 호주는 그러한 스포츠 영웅의 사상이 여론의 비난 세례에 시달리고 국민적인 모욕으로 치부되었으니, 인종차별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수 있다.] 피터 노먼은 선수 자격을 박탈당하고, 인격적으로도 이단자로 매도당하면서 살아갔다. 그러나 그는 이런 모욕적인 대우를 모두 감내했고, 스미스와 카를로스를 비난하면 복권시켜주겠다는 제의를 수차례나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.[* 존 카를로스는 본인과 토미 스미스는 차라리 본인들은 인종갈등 자체가 당대의 뜨거운 이슈였던 만큼 미국에 돌아와서 옹호해주는 사람들과 자기편이라도 있었지만 남의 나라 사회 문제에 양심적으로 한마디 한 노먼은 호주로 귀국 이후 자기편 한명도 없이 오히려 더 외롭고 힘든 세월을 보냈다는 뉘앙스로 인터뷰한 바가 있다.] 피터 노먼은 신념을 지킨 대가로 모두에게 잊힌 채 [[2006년]] 쓸쓸히 사망하였고,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장례식에 참석해 노먼의 관을 운구하며 그를 기렸다. 이후 [[2008년]], 그의 조카인 맷 노먼이 'SALUTE'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피터 노먼의 일화는 사람들에게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고, 마침내 사건 발생 후 44년이나 지난 [[2012년]] 호주 의회가 피터 노먼의 퇴출에 대해 고인에게 사과하면서 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. 하지만, [[국제올림픽위원회]]의 사과는 [[철면피|2023년 현재까지 한마디도 없다.]][* 이 이야기를 다룬 별별스포츠의 두 진행자 역시 영상 말미에 이 점을 지적했고, 에이버리 브런디지의 미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재임 당시 [[1936 베를린 올림픽]]의 나치즘에 대해 입을 꾹 다문 내로남불적 행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